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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5-04 09:25
무의식의 세계
 글쓴이 : 한별
조회 : 9,855  
무의식의 세계


우리가 잠들었을 때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의식이 계속 활동한다. 꿈이 그 대표적인 증거이고, 최면을 걸었을 경우 최면자의 지시를 기억은 못하면서도 최면에서 깨어나면 지시대로 행동하는 것도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몽유증 환자가 자다가 일어나 버젓이 행동하는데도 본인은 전혀 기억을 못한다. 그밖에 약물이나 환각제 복용으로 나타나는 환각이나 정신병의 망상 내용들이 사람마다 독특한데, 이것도 의지와 전혀 무관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의식을 잠재의식 또는 심층의식이라고 하는데 정신의학에서는 보통 무의식이라고 부른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과 융의 분석심리학은 심층 심리학의 양대 산맥이라 불린다. 이 둘은 무의식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 심리학과 구분된다. 무의식을 현대적 개념으로 정립한 최초의 인물은 프로이드이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 우리는 우리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모르는 부분이 더 많다. 우리가 보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우리는 우리 마음의 주인이 아니다”라고 프로이드가 선언하였을 때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프로이드는 마음의 구조를 의식, 전의식, 그리고 무의식의 3층으로 파악한다. 의식은 우리가 늘 접하는 잘 알고 있는 부분이고, 전의식은 의식하고 있지 않지만 조금 집중하면 의식할 수 있는 부분이고, 무의식은 우리가 알지 못하며 의식에 의해 파악될 수 없으나, 일생을 통하여 우리의 행동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그는 우리의 마음속에 우리가 알 수 없는, 그러나 끊임없이 활동하며 여러 세기에 걸쳐 물려받은 인간성의 총화로 계통발생적 유산과 한 개인이 출생한 후 경험하게 되는 개체발생적 유산으로서 무의식을 설명한다.
무의식을 직접 알 수는 없으나 신화, 전설, 민담, 환상, 동화와 정신병 환자의 망상이나 환상과 꿈에서 그것을 찾아볼 수 있다. 정신병 환자와 마찬가지로 화가, 작가, 음악가, 과학 발명가들 역시 무의식으로부터 오는 메시지를 창조적인 일로 변형시킨다.

융의 분석심리학

융은 무의식의 내용을 프로이드보다 좀더 세밀하게 분석하여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내용을 추가하고 있다. 그는 무의식을 집단 무의식과 개인 무의식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집단적 무의식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역사를 통해 여러 형태로 반복되어 여러 민족들의 신화 속에 표현된다고 하였다.
전통사회에서는 인간생활의 전환점을 표시하기 위해 성인식, 결혼식, 장례식 등을 극적으로 표현하여 신화를 만들어냈다. 신화 속에 나타나는 영웅들의 모험과 위험한 세계로의 여행은 모든 사람들이 성인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내적 투쟁을 상징한다. 영웅의 목표는 개인적 성공만이 아니고 사회적 구원을 남긴다. 우리의 문화는 신화를 만들기도 하고 신화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융은 무의식 속에 어떤 기본적 원형(archetype)들이 있으며 우리 모두는 그것들에 의해 변화된다고 주장한다. 그중에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 우리 마음의 통일을 가져다주는 힘이 있는데 그 전일적 원형을 융은 자기(self)라고 불렀다. 자기 원형은 예언자, 구원자, 진리, 산신령, 원, 만달라상 등 인격적 또는 비인격적 상으로 나타난다. 자기 원형은 분리된 몸을 마음과 하나로 통일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정신적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페르조나에 너무 집중되어 자기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분열된 마음을 극복하도록 자기 원형이 출현한다. 정신병은 본래 전일적인 자기와의 분열된 결과이면서 동시에 분열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목적도 있다고 강조한다.
페르조나는 우리 나라의 탈바가지처럼 고대 그리스에서 연극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일컫는다. 인간이 집단 세대에 살아가면서 적응하는 양식으로 융은 페르조나를 우리의 외적 인격이라 하였다. 흔히 나의 생각, 나의 신념, 나의 가치관, 나의 것을 자세히 보면 자기의 것이 아닌 남들의 생각, 부모의 생각, 주위사람들의 생각이다. 집단적으로 주입된 가치관이 마치 자기 것으로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의사로서의 얼굴, 부모로서의 얼굴, 남자로서의 체면, ‘얼굴을 들 수 없다’ 등에서 체면이나 얼굴이 페르조나이다.
페르조나와 동일시가 지나치면 내적 정신세계와의 관계를 상실하게 된다. 중년의 위기에 오는 우울증은 생물학적 요인 외에도 심리적으로 자신의 페르조나에 너무 매달리기 때문이다. 꼼꼼하고 보수적이고 지나치게 양심적인 사람이 중년에 우울증에 걸리는 것은 그동안 자기 자신과 떨어져 페르조나로만 살아왔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외적 인격인 페르조나에 대응하여 내적 인격이 있는데,  남성에게는 아니마, 여성에게는 아니무스가 그것이다. 보통 남성은 동적이며 합리적이고 권위, 법, 명예와 사회를 중시하고, 여성은 수동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생명을 잉태하고 창조하며 사회보다는 가정을 중시한다. 하지만 남성 속의 여성인 아니마는 분노와 변덕, 창조적 감흥이며, 여성 속의 남성 아니무스는 따지기 좋아하고 진취적이고 지혜의 원천이기도 하다. 우연히 만난 어떤 여자(또는 남자)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고 자기와 결혼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갖는 환자의 애정망상(erotic delusion)도 아니마와 아니무스 원형의 투사이다.
유아가 인식하는 부모는 현실적 부모상이 아니라 환상적 부모상이다. 원형적 부모상이 나이가 들면서 무의식에 남고 현실적 부모상만 남는다. 무의식에 남은 부모상은 다른 이성에 투사될 준비태세를 갖춘 채 남아 있게 된다. 긍정적인 부모상은 사랑의 대상이면서 신적인 존재이다. 신흥종파의 위대한 교주는 여성들의 아니무스 원형의 투사이다.
이성간의 사랑에서 첫 눈에 강렬한 황홀감을 일으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방의 남자가 둘도 없는 현자, 영웅으로 인식되며 여자가 선녀처럼 어여뻐 보이면 아니마, 아니무스의 투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강렬한 혐오감, 공포감, 불쾌감과 같은 감정의 포로가 되는데 이러한 마음일수록 강박적이고 마력적이어서 헤어날 수 없다. 이때도 어김없이 부정적 아니마, 아니무스의 투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융은 자아의식의 무의식적인 부분으로 그림자를 말한다. 그림자는 나의 어두운 부분, 내가 모르는 부분, 나도 모르게 실수하고 내 주장과 모순되게 행동하도록 하는, 내가 모르는 부분을 의미한다. 곧 무의식적 자아라 할 수 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서 하이드는 지킬 박사의 그림자이다. 민간설화나 문학 작품에 나오는 수많은 대극-흥부와 놀부, 콩쥐와 팥쥐, 파우스트와 메피클레도스, 천사와 마귀-은 선하고 초인적인 존재와 악하고 비천한 존재가 모두 우리의 그림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콤플렉스와 열등감

흔히 콤플렉스는 열등감이나 약점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융은 연상검사를 통하여 콤플렉스라는 독특한 개념을 발견하였고 콤플렉스를 통하여 원형(archertype)이론을 전개해나간다.
콤플렉스는 의식과 무의식을 구성하는 것으로, 우리의 사고의 흐름을 일시 멈추게 하여 말문이 막히거나 더듬거리게 만들고, 흉금을 울려 목메게 만들거나 당황하게 만들고, 괜히 화나게 만드는 무엇이다. 나도 모르게 실수하게 하고, 별안간 딴 사람이 된 것처럼 벌컥 화를 내거나 얼굴이 벌겋게 만드는 무엇이다. 열등감뿐만 아니라 희노애락의 모든 감정과 다 관계가 있다. 우리는 마음속에 여러 분신을 갖고 있는데 그 부분 인격이 콤플렉스이다. 콤플렉스는 우리의 꿈속에 나타나는 귀신이나 동물 등 여러 요소들이기도 하고 노이로제를 만드는 주범으로 강박적으로 생각하게 하고 행동하게 만들기도 한다. 환청이나 환시도 콤플렉스의 투사로 설명할 수 있다.
융은 콤플렉스 중 집단적 무의식의 내용을 이루는 상을 원형이라 하였다. 집단적 무의식은 많은 원형들로 구성되어 있다. 원형은 인간정신의 근본적이며 보편적인 핵으로 선험적인 조건이라 하였다. 영웅이나 초인으로부터 귀신, 천사 원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그 중에서 전일적 원형으로 자기를 설정한다. 의식과 무의식을 아우른 전체성으로서의 자기 자신은 불교의 법신이며 불성이고 종교의 신성, 최고의 진리이며, 그것이 인격화된 모습이 부처이고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콤플렉스는 본래 열등하거나 병적인 것이 아니다. 다만 콤플렉스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살아갈 때 문제가 된다. 콤플렉스는 강력한 감정적 에너지를 지니고 있어 삶 속에서 두고두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콤플렉스를 깨달아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따라서 분석 치료에서 콤플렉스의 의식화 작업은 열등감의 극복을 뛰어넘어 자기 실현과 자기 완성의 길로 통한다.